처음엔 좋은 뜻이었으나 똥이 된 단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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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한 음절 또는 몇 음절로 구성된, 뜻이 담긴 독립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의 단위입니다. 그래서 단어만 들어도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음절이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와 단어를 연결시켜 주는 조사와 단어를 강조시켜주는 부사 등, 언어란 육신은 없지만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은 존재라 변화하고 늘었다줄었다, 원래 의도와 다르게 정반대의 의미로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억에 의해 좋다-나쁘다, 좋다-싫다, 화나다, 아련하다 등 여러 기분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여기 단어 몇 개가 있습니다.

명품

수제

명품 이름이 붙은 물건. 즉, 이름이 붙을 만큼 좋은 물건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수제, 손으로 만들었다는 뜻. 영어로 Hand crafted라고 표현합니다. 손으로 만든 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공장에서 만든 천편일률적인 제품과 다르게 사람의 손길이 닿은 특별한 물건이란 뜻으로 통합니다. 명품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또 다른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에 특별한 물건은 귀합니다. 단지 귀해서 특별할 수도 있고, 정말 좋아서 특별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귀해서 특별하다면 귀한 것=특별한 것으로 통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이런 특별함을 뜻하는 단어가 너무 흔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별함을 가지지 못한 존재가 특별함의 껍데기라도 쓰고 싶어 특별함을 남발하는 것,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듣는 제게는 짜증과 혼란을 가져옵니다.

요즘은 정말 온갖 것에 명품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진짜 명품에는 명품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수제. 손으로 만든 물건이라지만 이제는 공장에서 나온 물건에도 아무렇지 않게 수제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공장에서 나오는 빵, 패티를 주문받아 그대로 조리만 해서 내는 햄버거에도 아무렇지 않게 수제버거라는 말을 갔다붙입니다. 그래서 수제라는 뜻도 이제는 변질돼 버렸습니다. ‘수제’나 ‘명품’이나 고급품을 지칭할 수 없게 돼 버렸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다 보면 떠오르는 연예인이 한명 있습니다.

박경림

꽤 이름이 알려진 방송인이며, 지금은 영화 관련 행사에서 사회자로 굳건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이 사람이 싫습니다. 그녀의 화법이 싫습니다.

명품이 개나소나 붙이는 지칭명사가 돼 버렸는데 박경림이 하는 말을 들으면 화법이 모두 이런 식입니다. 그녀의 입에 들어가면 세상 모든 단어가 위에서 언급한 명품화가 돼버립니다.

천재(天才). 하늘에서 받은 재주. 정말 특별한 사람에게 붙일 수 있는 말입니다.

신스틸러. 장면을 훔치는 사람. 조연임에도 정말 뛰어난 연기를 보여줘 주연 이상으로 주목받는 배우를 뜻합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면 모든 배우가 천재가 되고, 모든 조연 배우가 신스틸러가 됩니다.

사회자로서 행사 분위기를 띄우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너무 저런 식으로 아무에게나 천재니 뭐니 하는 얘기를 하면 듣는 입장에서 전혀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당사자는 오히려 조롱받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분명 일부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과잉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귀는 눈과 달리 신체 일부분이나 물체를 가지고 막지 않으면 청자에게 자연스레 전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질끈 감아버리면 정보를 차단할 수 있는 눈과 달리 귀는 눈처럼 귀를 생각만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기름기 쏙 뺀 말들을 듣고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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