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양을 포기해서 나온 저렴함
혼다라멘, 맛과 양을 포기해서 나온 저렴함
![]() |
---|
사진 출처 - 체인 페이스북 |
얼마전 서울 모 지역에 오픈한 혼다라멘이라는 체인점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간단하게 평하자면 여기는 돈코츠 라멘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통 돈코츠 라멘을 좋아하신다면 방문을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뻑뻑한 돼지죽까지는 아니더라도 돼지 뼈를 우린 맛이 제대로 나야할텐테 맛이 약합니다. 맛이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평소 유명하다는 라멘가게의 돈코츠가 부담스러웠던 분이라면 무난하게 드실 수 있는 맛입니다. 상당히 대중적인 맛입니다. 돈코츠 라멘으로 유명한 홍대 부탄츄같은 뻑뻑한 돼지죽 스타일을 싫어하기에 맛은 딱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면과 국물에 너무 특색이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업소용 인스턴트 소스로 내가 직접 만들면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이 가게에서 분노했습니다. 라면 맛 때문이 아닙니다. 위에 적었지만 라멘은 충분히 먹을만 합니다. 메뉴 구성의 황당함 때문입니다.
돈코츠 세트를 시켰는데 작은 샐러드와 삼각형 밥이 함께 나옵니다. 그냥 -삼각형- 밥이라 오니기리라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보통 샐러드는 전채로 생각하고 먹습니다. 하지만 이 세트에 나오는 샐러드는 전채 치고 너무 자극적입니다. 샐러드를 먹고 라멘을 먹으니 국물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함께 나오는 큐브 치즈는 치명타를 가합니다. 순수한 치즈맛도 아닌 가향된 제품이라 샐러드로 너덜너덜해진 미각을 넉다운 시켜버렸습니다. 에피타이저가 메인인 라멘을 먹기 전부터 손님의 미각을 공격합니다. 샐러드 소스에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치즈도 당연히 문제가 있구요. 라멘 국물이 진했다면 샐러드 소스가 자극적이어도 괜찮았겠지만, 위에 적었다 시피 국물은 순한 편입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샐러드 소스, 치즈에 이은 3차 공격이 남아있었습니다. 바로 스푼에 올려진 토마토입니다. 생 토마토도 아닌 무려 오리엔탈 소스에 졸여진 듯 새콤한 맛이 나는 껍질이 벗겨진 이 방울 토마토(사진 오른쪽 아래). 라멘 국물을 떠 먹으려면 이 토마토를 입에 넣던지, 다른 접시에 옮겨 담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도대체 왜? 왜 스푼에 올려 놓았을까요? 라멘 국물은 스푼으로 떠 먹는 게 아니라 대접을 들고 마시라는 친절한 깨우침을 위해? 샐러드와 치즈에 넉다운된 미각에 이 짭짤한 방울 토마토가 결정타를 가합니다. 맛보는 순간 제 혀는 이후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라멘이 맛이 약하다고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토마토를 간장 종지 같은데 준비해 줬더라면, 마무리 후식으로 먹었다면 오히려 좋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먹으며 드는 생각이 -아, 이 체인은 정말 음식에 대해 정말 모르는 사람이 사업만 생각하고 만들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메인을 망쳐버리는 전채, 스푼에 올려진 토마토.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마지막으로 라멘의 꽃 차슈. 정말이지 얇고 작은 차슈에 실망감이 더해졌습니다. 손가락 두개 붙여놓은 크기의 차슈가 3개 들어있는데 너무 얇아서 냉동 삼겹살 구워먹는 느낌이었습니다.
결론을 얘기하면 국물 밍밍해, 차슈 작아, 양도 적어. 4,900원의 이 라멘을 다시는 먹을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가격이 저렴하긴 하지만 맛과 양, 재료를 포기한 가격입니다. 이전에 방문했던 유즈라멘은 9천 원입니다. 4천원 더 주고 제대로 된 라멘을 먹겠습니다.
사족입니다. 같은 장소 혼다라멘 이전에 있던 식당이 생각나네요. 이 매장은 좁고 길이가 긴 구조입니다. 긴 모양의 가게면 셀프바를 가운데에 설치를 했으면 좋았을텐데요. 가게 구석에 셀프바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모든 것을 셀프로 해놔서 정말이지 너무너무 불편했던 기억이 나네요. 물, 국물, 반찬, 스푼, 앞접시 등 두번은 가야 챙겨올 수 있었습니다. 초반에 맛이 있어 불편함을 무릅쓰고 꽤 다녔었지만 몇달 지나니 끓여서 며칠 쓴 듯한 육수맛이 나는 우동과 갈수록 맛이 없어지는 메뉴들. 발길을 딱 끊었는데 이후 1년도 안돼 그 우동가게는 문을 닫았습니다. 그럴듯한 인테리어에 몇번째 밥집을 오픈하는 청년 사업가라는 소개글이 적혀 있던 그 가게. 1년 겨우 버티고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 이 혼다라멘 체인이 들어섰습니다. 백종원 씨가 국감에 나와 골목식당에 출연하는 이유가 식당 만만하게 보지말고, 자신 없으면 하지말라는 뜻으로 방송하는 거라는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먹는 장사,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댓글남기기